2011년 3월 4일 금요일

블랙 스완 - 압도적 연출, 혼신의 연기

젊은 시절 무용수였던 어머니 에리카(바바라 허시 분)와 함께 사는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는 노심초사 끝에 ‘백조의 호수’의 주역으로 발탁됩니다. 하지만 백조에 비해 악역 흑조를 제대로 연기하지 못한다는 단장 토마(뱅상 카셀 분)의 지적에 니나는 전전긍긍하며 극심한 불안에 시달립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은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흑조, 1인 2역을 연기하기 위해 중압감에 시달리는 광기 어린 여성 무용수의 심리를 극적으로 포착합니다. 주인공 니나는 자신과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자에 밀려나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니나의 집착은 출혈이 수반될 만큼 등을 심하게 긁는 행위나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나 자신을 저주하는 듯한 환상으로 연결됩니다. 러닝 타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핸드 헬드는 발레의 역동성과 무용수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뒤흔들리는 니나의 심리 상태를 상징합니다.

광기 어린 예술가의 정신 분열이라는 소재는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에 ‘블랙 스완’의 전반적인 서사는 전형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연출력과 나탈리 포트만의 혼신의 연기가 어우러져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합니다. 심약한 여성 무용수가 남성 단장, 동료 무용수와 미묘한 감정을 형성하기에 멜로로 흐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오히려 주인공의 마음을 옥죄는 원인으로 부각시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이 극장과 집 등 실내에 국한된 ‘블랙 스완’은 호러와 미스테리의 요소를 갖춘 연극적인 스릴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꼼수 같은 반전에 의존하지 않고 직선적이며 우직하게 결말로 쇄도하는 것이 ‘블랙 스완’의 매력입니다. 해피 엔드에의 타협과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고 절정의 순간 파국에 치달아 엔드 크레딧을 올림으로써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자신의 목숨과 예술의 완성을 맞바꾸는 예술가의 혼이라는 소재는 일반적이지만 그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 ‘블랙 스완’은 압도적으로 힘이 넘칩니다. 대중 앞에 서며 자아 분열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곤 사토시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퍼펙트 블루’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자아 분열과 고통의 원인, 그리고 결말은 ‘블랙 스완’과는 다릅니다.

의상과 분장, 소품을 중심으로 관람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니나가 흰색 의상을 즐겨 입는 것은 백조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흑조 연기에 취약한 약점을 시사하는데, 동료이라 라이벌 릴리(밀라 쿠니스 분)로부터 검정색 옷을 받아 입은 후 흑조 연기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클라이맥스의 니나의 강렬한 얼굴 분장과 온몸을 흑조의 검은 깃털이 잠식해가는 CG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니나의 집 욕조에는 백조 그림이 눈에 띕니다. 니나의 휴대 전화와 오르골은 ‘백조의 호수’의 테마가 장식하는데 휴대 전화 벨 소리와 오르골의 테마는 니나의 신경을 자극합니다. 참다못한 니나는 오르골을 내던져 박살내지만 하반신 밖에 남지 않은 오르골의 무용수 인형은 여전히 춤을 춥니다. 이는 죽음의 순간까지 춤을 추어야 했던 니나의 운명을 직접적으로 암시합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첫째는 정신 분열적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며 둘째는 무용수로서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아역 시절부터 연기력이 입증된 나탈리 포트만은 4살부터 13살까지 발레를 익힌 경험과 ‘블랙 스완’을 앞두고 하루 5시간의 맹훈련을 바탕으로 극중에서 정신 분열에 시달리는 무용수의 연기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나탈리 포트만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우연이 아닙니다.

프랑스 출신의 발레단 단장 토마 역의 뱅상 카젤은 야심 넘치는 바람둥이 보스의 이미지에 부합됩니다. 니나에 갑작스레 키스하는 등의 장면에서 과연 토마가 니나를 유혹하는 것인지 아니면 니나의 잠재된 연기력을 끌어내는 것인지 불분명한, 속내를 알 수 없는 괴팍한 캐릭터이기에 니나는 토마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더욱 혼란스러워 합니다. 은퇴 이후 폐인이 된 발레리나 베스 역의 위노나 라이더는 배우의 실제 삶과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겹쳐져 아련함을 자아냅니다.

[월드 인베이젼] 국내 포스터

[월드 인베이젼] 한글 자막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