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3일 수요일

언노운 - 본 시리즈 판에 박은 아류작

마틴 해리스(리암 니슨 분)는 아내 리즈(재뉴어리 존스 분)와 함께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베를린에 도착합니다. 여권이 든 가방을 분실한 마틴은 택시에 탑승해 공항으로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흘 만에 깨어나지만 누군가 자신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합니다.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이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며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파헤친다는 줄거리의 ‘언노운’에서는 다른 영화들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토탈 리콜’, ‘메멘토’ 등의 영화는 물론이며 부당한 음모에 연루된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으며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는 ‘본 아이덴티티’를 비롯한 ‘제이슨 본’ 3부작을 판에 박은 듯합니다. 유럽을 배경으로 미국인 첩보원이 현지 여성의 도움을 받아 자아를 되찾는다는 내용의 얼개는 ‘본 아이덴티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제이슨 본’ 3부작의 영향을 받아 역시 리암 니슨이 주연을 맡았던 ‘테이큰’도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색빛 도시 베를린의 풍경을 희뿌옇게 포착한 영상은 주인공 마틴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반영한 듯하지만, ‘언노운’은 초반부터 너무나 많은 단서를 제공하는 지나치게 명확한 스릴러이기에 113분의 러닝 타임 중 절반 정도만 지나면 결말을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작전의 목표물에 대해서는 나름의 반전이 있으나 서사의 큰 틀을 뒤엎을 만큼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닙니다. 극중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라 할 수 있는 옥수수 신품종의 전 세계 무상 배포는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그나마 인상적인 것은 동독 비밀경찰 출신의 위르겐(브루노 간츠 분)과 정체를 숨긴 로드니 콜(프랭크 란젤라 분)입니다. 두 노인 캐릭터는 서로에 대한 경의를 잊지 않으며 인상적인 최후를 남깁니다.

만추 - 텅 빈 서사, 지루한 멜로

남편을 살해하고 복역 중인 애나(탕웨이 분)는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7년 만에 휴가를 얻습니다. 시애틀로 향하던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훈(현빈 분)과 애나는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가까워집니다.

‘만추’는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이 ‘색, 계’의 탕웨이를 캐스팅해 이만희 감독의 1966년 작을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원작의 무게에 비와 안개에 젖은 시애틀이라는 매력적인 공간적 배경이 어우러졌음을 감안하면 ‘만추’는 상당히 기대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선남선녀 배우를 아름다운 공간적 배경에 세워둔다고 훌륭한 멜로 영화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만추’는 반면교사로서 일깨웁니다.

우선 ‘만추’의 서사는 빈틈이 너무 많습니다. 애나와 훈은 세 번에 걸쳐 만나는데, 첫 번째 만남은 순전히 우연이라 해도 두 번째 만남 역시 우연에 의존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약속을 하지 않은 남녀 주인공을 동일한 시간과 장소로 이끌어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연이 아닌 필연적 장치들이 요구되기 마련인데 이를 가볍게 무시합니다. 세 번째 만남 역시 어떤 과정을 거쳐 훈이 장례식장을 찾아오게 되었는지 전혀 설명이 없습니다. 대도시 시애틀에서 어쩜 저렇게 쉽게 우연히 만나고 손쉽게 장례식장을 찾아내는 것인지 의문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영화 종반 훈을 찾아온 옥자의 남편의 행위도 기묘합니다. 그가 음모를 꾸민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훈을 범인이라 생각하는지 관객으로 하여금 알 수 없도록 단서를 제공하지 않은 것 역시 불친절합니다. 훈의 행방을 설명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이겠으나 옥자의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훈을 찾아와 얼굴 한 번 보고 떠난 것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만추’의 허술한 서사는 멜로라는 장르적 특성을 차치하고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각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합니다.

그렇다고 ‘만추’가 서사의 구멍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감 넘치는 것도 아닙니다. 단 두 주인공만으로 115분의 적지 않은 러닝 타임을 이끌어 가지만 모든 시퀀스가 지나치게 길며 대사와 대사의 간격은 공허합니다. 사랑이 대화로만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반을 제외하면 키스 장면도 없으며 베드 신도 배제되어 있으니 (물론 ‘만추’의 흐름 상 베드 신이 삽입되지 않은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습니다.) 대사에 의존하는 셈인데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침묵으로 인해 대사와 대사의 간격이 벌어져 지루합니다. 여백의 미학을 통해 정서적 울림을 환기시키는 수단으로서 결정적인 장면에서 활용되었어야 할 침묵이 영화 전반을 잠식한다는 것은 강약조절에 실패했다는 의미이며 각본의 구멍과 감독의 연출력 부재가 원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연한 만남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장면이 추가되거나 차라리 90분 정도로 과감히 압축해 속도감을 보강했다면 다소 나은 영화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감독의 연출력 부재는 전술한 부분에 그치지 않습니다. 애나와 훈이 놀이공원에서 백인 커플의 대화를 대신하는 장면은 초현실적인 춤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매끄럽게 연출되었다면 상당히 인상적이었을 장면이 어색한 분위기로 긴 시간 동안 질질 끌어 손발이 오그라들게 합니다.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식당 장면도 감정의 선이 조울증 환자처럼 널뜁니다. 난투극을 무마하려는 훈의 변명은 어처구니없는 실소를 자아내며 뒤이은 애나의 오열은 훈이 실소를 자아낸 직후이기에 뜬금없습니다. 애나가 유일하게 슬픔과 외로움을 표출하는 오열 후 곧바로 두 주인공이 나란히 걷고 있는 장면으로 넘어간 것도 어색합니다. 애나의 감정에 관객이 이입할 수 있도록 이 장면에서야말로 침묵과 여백의 미가 필요한 시점이었는데 곧바로 전환되어 여운을 남기지 못합니다.

냉정히 평가하면 영화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지 못한 현빈의 연기력도 아쉽습니다. TV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스크린을 채우기 위해서는 단지 잘 생긴 외모뿐만 아니라 미묘한 표정 연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만추’의 허술한 각본에서 비롯된 대사 사이의 공백을 현빈의 연기력으로 메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각본과 연출력, 동료 배우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탕웨이만이 고군분투할 뿐입니다.

굳이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면 종반의 롱 테이크 키스 신과 엔딩이지만 그와 같은 인상적인 장면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은 강력한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작년 가을 개봉 예정이었지만 개봉되지 못했고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인기에 힘입어 뒤늦게 개봉된 것인데 데뷔작을 연출한 신인 감독도 아닌 커리어가 검증된 감독이 훌륭한 배우를 캐스팅해 연출한 작품이 왜 이처럼 개봉이 늦춰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환상의 그대 - 탈출구 없는 사랑의 진퇴양난

우디 앨런의 2010년 작 ‘환상의 그대’는 알피(안소니 홉킨스 분)와 헬레나(젬마 존스 분)의 셰브리치 부부와 외동딸 샐리(나오미 왓츠 분)의 그의 남편 로이(조쉬 브롤린 분) 부부를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이 배우자 대신 새로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전술한 두 부부 뿐만 아니라 샐리의 직장 상사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 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부들, 심지어 결혼을 약속한 로이의 맞은편에 사는 디아(프레이다 핀토)조차 새로운 연인을 만나 결혼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으니 이전보다 행복해지라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설처럼 헤어진 배우자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미 떠난 배우자가 쉽게 돌아올 리 없으며 새로운 연인을 정리하는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환상의 그대’는 사랑의 진퇴양난에 빠진 성인남녀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지만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했을 법하기에 개연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지적이며 합리적인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이루는 이가 점성술을 신봉하는 헬레나라는 점은 매우 역설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디 앨런이 나이가 들어 변화한 것일 수도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의 원제(‘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를 언급하는 등장인물이 헬레나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헬레나가 언급한 ‘A Tall Dark Stranger’, 즉 국내 개봉명 ‘환상의 그대’의 실체는 ‘A Tall Dark Stranger’도, ‘환상의 그대’도 아니라는 점에서 사랑은 일종의 자기 최면이라는 반어적 결론에 도달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느덧 76세에 도달한 우디 앨런이 과거와 같은 강력한 폭소탄을 터뜨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과 비슷한 노년의 등장인물들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압도적인 양의 수다를 동원하는 것은 여전하면서도 이를 통해 점층적으로 큰 웃음을 자아내도록 하는 장면은 그렉이 헬레나의 술잔을 빼앗아 내던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환상의 그대’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우디 앨런의 신작들은 반가우며 소소한 웃음을 짓게 하는 능력은 여전하지만 힘이 떨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알피가 매춘부 샤메인(루시 펀치 분)과 결혼해 아들을 갈망하는 것은, 미라 소르비노가 매춘부로 등장했던 ‘마이티 아프로디테’의 변주곡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금발의 글래머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의 묘사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니발 렉터 박사로 카리스마를 과시했던 안소니 홉킨스가 이 빠진 물주 노인네가 된 것이나, 청춘스타였으나 중년이 되어 헐리우드에서 더욱 각광받는 조쉬 브롤린이 결정적인 장면에서 불룩한 아랫배를 내밀며 거리로 뛰쳐나와 초라함을 가중시키는 모습은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