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4일 금요일

블랙 스완 - 압도적 연출, 혼신의 연기

젊은 시절 무용수였던 어머니 에리카(바바라 허시 분)와 함께 사는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는 노심초사 끝에 ‘백조의 호수’의 주역으로 발탁됩니다. 하지만 백조에 비해 악역 흑조를 제대로 연기하지 못한다는 단장 토마(뱅상 카셀 분)의 지적에 니나는 전전긍긍하며 극심한 불안에 시달립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은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흑조, 1인 2역을 연기하기 위해 중압감에 시달리는 광기 어린 여성 무용수의 심리를 극적으로 포착합니다. 주인공 니나는 자신과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자에 밀려나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니나의 집착은 출혈이 수반될 만큼 등을 심하게 긁는 행위나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나 자신을 저주하는 듯한 환상으로 연결됩니다. 러닝 타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핸드 헬드는 발레의 역동성과 무용수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뒤흔들리는 니나의 심리 상태를 상징합니다.

광기 어린 예술가의 정신 분열이라는 소재는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에 ‘블랙 스완’의 전반적인 서사는 전형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연출력과 나탈리 포트만의 혼신의 연기가 어우러져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합니다. 심약한 여성 무용수가 남성 단장, 동료 무용수와 미묘한 감정을 형성하기에 멜로로 흐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오히려 주인공의 마음을 옥죄는 원인으로 부각시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이 극장과 집 등 실내에 국한된 ‘블랙 스완’은 호러와 미스테리의 요소를 갖춘 연극적인 스릴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꼼수 같은 반전에 의존하지 않고 직선적이며 우직하게 결말로 쇄도하는 것이 ‘블랙 스완’의 매력입니다. 해피 엔드에의 타협과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고 절정의 순간 파국에 치달아 엔드 크레딧을 올림으로써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자신의 목숨과 예술의 완성을 맞바꾸는 예술가의 혼이라는 소재는 일반적이지만 그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 ‘블랙 스완’은 압도적으로 힘이 넘칩니다. 대중 앞에 서며 자아 분열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곤 사토시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퍼펙트 블루’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자아 분열과 고통의 원인, 그리고 결말은 ‘블랙 스완’과는 다릅니다.

의상과 분장, 소품을 중심으로 관람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니나가 흰색 의상을 즐겨 입는 것은 백조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흑조 연기에 취약한 약점을 시사하는데, 동료이라 라이벌 릴리(밀라 쿠니스 분)로부터 검정색 옷을 받아 입은 후 흑조 연기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클라이맥스의 니나의 강렬한 얼굴 분장과 온몸을 흑조의 검은 깃털이 잠식해가는 CG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니나의 집 욕조에는 백조 그림이 눈에 띕니다. 니나의 휴대 전화와 오르골은 ‘백조의 호수’의 테마가 장식하는데 휴대 전화 벨 소리와 오르골의 테마는 니나의 신경을 자극합니다. 참다못한 니나는 오르골을 내던져 박살내지만 하반신 밖에 남지 않은 오르골의 무용수 인형은 여전히 춤을 춥니다. 이는 죽음의 순간까지 춤을 추어야 했던 니나의 운명을 직접적으로 암시합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첫째는 정신 분열적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며 둘째는 무용수로서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아역 시절부터 연기력이 입증된 나탈리 포트만은 4살부터 13살까지 발레를 익힌 경험과 ‘블랙 스완’을 앞두고 하루 5시간의 맹훈련을 바탕으로 극중에서 정신 분열에 시달리는 무용수의 연기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나탈리 포트만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우연이 아닙니다.

프랑스 출신의 발레단 단장 토마 역의 뱅상 카젤은 야심 넘치는 바람둥이 보스의 이미지에 부합됩니다. 니나에 갑작스레 키스하는 등의 장면에서 과연 토마가 니나를 유혹하는 것인지 아니면 니나의 잠재된 연기력을 끌어내는 것인지 불분명한, 속내를 알 수 없는 괴팍한 캐릭터이기에 니나는 토마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더욱 혼란스러워 합니다. 은퇴 이후 폐인이 된 발레리나 베스 역의 위노나 라이더는 배우의 실제 삶과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겹쳐져 아련함을 자아냅니다.

[월드 인베이젼] 국내 포스터

[월드 인베이젼] 한글 자막 예고편

[랭고] 예고편 - 2

<컨트롤러>조정국이 필요해

필립 K. 딕은 로맨스의 꿈을 꾸는가? 그럴 리가. 조지 놀피 감독은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믿은 모양이다. 필립 K. 딕 원작 영화들(<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은 정체성 혼란과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시니컬한 어조로 풀어내면서 원작에 어느 정도는 경배를 바쳐왔다. <컨트롤러>는 원작에서 ‘조정국’이라는 소재만을 가져온 로맨스영화다.
<컨트롤러>의 핵심은 ‘조정국’이다. 이들은 전세계 인간들의 삶을 조정하며 미래를 정해진 공식대로 흐르게 만드는 존재들로서, 중절모를 쓴 모양새가 필립 말로 소설의 주인공들 같지만 종교적으로는 ‘천사’에 가깝다. 조정국이 가장 공들여 조정하고 있는 인간은 잘나가는 뉴욕주 정치가 데이빗(맷 데이먼)이다. 그런데 장차 미국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데이빗이 계획에도 없던 현대 무용수 엘리스(에밀리 블런트)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데이빗이 엘리스와 사랑에 빠지면 정치를 그만둘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조정국 직원들은 둘을 떼놓으려 안간힘을 쓴다.
<본 얼티메이텀>과 <오션스 트웰브>의 각본가 출신인 조지 놀피는 소소한 디테일이 어떻게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한국의 공무원 집단처럼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조정국 직원들과 조정국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요리조리 통제에서 빠져나갈 틈을 찾는 데이빗의 대결은 꽤 흥겹다. 다만 ‘자유의지’와 ‘운명론’의 대결을 다룬 로맨스로 굴러가던 영화는 굳이 액션스릴러 장르의 클리셰를 집어넣고야 말겠다는 감독의 자유의지(혹은 할리우드영화의 운명론)에 의해 급격하게 다리가 풀린다. <컨트롤러>는 원작과 각색 사이, 장르와 장르 사이를 통제하는 조정국이 필요한 영화다.

<블랙 스완> 대런 아로노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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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블랙 스완>(2010)은 현재의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보여줄 수 있는 그 자신의 최상급 영화다. 사회의 쓴맛을 눈앞에 둔 미성숙한 주인공, 그에 따른 강박관념, 집요하게 주인공을 물고 늘어지는 카메라와 색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섬세한 미장센, 무엇보다 감독 본인이 10년 전부터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그렇다. <블랙 스완>을 발표하기 전까지 <레퀴엠>(2000)으로 기억되던 대런 아로노프스키에게 오랜만에 새로운 대표작이 생긴 셈이다.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삶의 균형을 이루지 못해 몰락하거나 파멸 지경에 이른 인물을 주로 다뤄왔다. 데뷔작 <파이>(1998)는 수학천재가 숫자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약물에 의존하다가 심한 정신적 데미지를 입는 영화였고 <레퀴엠>은 평범한 인물들이 마약, 다이어트 알약 등 각종 중독에 빠져 인생의 혹한기를 보내는 이야기였으며 <더 레슬러>(2008)는 한때는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제 한 몸조차 가누기 힘든 노구의 레슬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블랙 스완>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백조의 이미지를 지녔지만 사악한 흑조의 이미지가 부족해 강박증에 시달리는 한 발레리나의 이야기다.

아로노프스키의 영화에서 인물의 비극성은 가장 두드러지지만 그것이 인생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의례적인 통과의례, 즉 성장통으로 이해해야 하는 편이 옳다. <블랙 스완>은 바로 그런 감독의 영화적 세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극중 니나(나탈리 포트먼)는 발레 실력을 인정받아 ‘백조의 호수’의 새 주연으로 전격 발탁된다. 하지만 여전히 인형으로 방안을 꾸미기 좋아하고 동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에게 관능적인 흑조를 표현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가능한 영역이다. 다시 말해, <블랙 스완>은 니나가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진통을 겪는 성장영화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인간에게 성장이란 세상이 자신에게 드리운 그늘을 인정하고 극복할 때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다. 하여 아로노프스키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은 비극의 끝이자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레퀴엠>의 해리(쟈레드 레토)는 팔을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한 마약 중독 상태였지만 병원 침대 위에서 엄마 뱃속에 있는 자세를 취하며 새 출발을 다짐했고 <레슬러>의 랜디(미키 루크)는 가까스로 얻은 재기전 무대에서 흡사 예수 부활을 연상시키는 레슬링 동작으로 링 위를 날아오르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 보였다.

<블랙 스완>의 니나는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온전히 집중하는 최초의 여자 캐릭터다. 발레 자체도 그가 이전에 배경으로 끌어들였던 마약 거래가 이뤄지는 뒷골목이라든지 레슬링 무대와 같은 남성성이 지배하는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성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마저 달라지지는 않는다. <블랙 스완>에서도 아로노프스키는 엄마 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린’ 니나를 바깥세상으로 데려나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백지 같은 그녀에게 마약도 맛보게 하고 섹스도 경험하게 만드는 등 온갖 검은 색을 덧칠해 기어코 세상의 빛과 어둠, 선과 악 사이에서 균형을 잡도록 유도한다.

그러다보니 아로노프스키는 극중 주인공을 가혹하리만치 몰아세운다. <블랙 스완>의 경우, 흑과 백의 미장센으로만 이뤄진 세계를 창조해 그 안에 니나를 가둬두고 한계 상황으로 밀어붙인다. 그것이야말로 감독의 특출한 영화적 특징인데 그중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된 핸드헬드 카메라는 집요하다싶을 정도로 배우에게 달라붙어, 특히 뒷모습을 비추는데 주저함이 없다. 나탈리 포트먼과 같은 A급 배우를 데려다놓고 뒷모습에 주목한다는 건 사실 금기에 가깝다. 그럼에도 모험을 감행한 건 <블랙 스완>이 잠재한 욕망을 전면으로 끄집어내는 이면의 영화였던 까닭이다. 말하자면, <블랙 스완>은 니나가 백조에서 흑조로 거듭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니나는 등에서 검은 털이 자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괴로워한다!)

이처럼 성장을 영화적 주제의 동력으로 삼는 대런 아로노프스키에게는 필생의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스파이더맨>(2002)부터 <킥 애스>(2010)까지, 최근의 슈퍼히어로물은 슈퍼히어로의 영웅적 면모보다 그에 따른 고뇌에 집중하며 성장영화로도 기능한다. 그런 경향에 발맞춰 아로노프스키가 슈퍼히어로물에 목을 매는 건 이미 유명하다. <레퀴엠>과 <천년을 흐르는 사랑>(2007) 사이에 존재하는 연출 공백기 6년은 <배트맨 비긴즈>(2005)와 <왓치맨>(2009) 연출권 확보를 위해 공사다망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프로젝트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잭 스나이더에게로 돌아가며 아로노프스키는 슬럼프를 맞게 된다. 그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만든 <천년을 흐르는 사랑>은 흥행에서 재앙을 맞게 됐고 절치부심하며 선택한 작품이 바로 <더 레슬러>이었다.

그는 <더 레슬러>에서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대리만족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탄생한 슈퍼히어로물이 결국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듯이 ‘WWE’로 상징되는 프로레슬링의 링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무대인만큼 랜디에게 슈퍼히어로의 그림자를 덧씌운 것. <더 레슬러>를 통해 2008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린 대런 아로노프시키는 차기작으로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슈퍼히어로물 <로보캅>의 리메이크를 선택하게 된다. <더 레슬러>에서 호흡을 맞췄던 미키 루크와 함께 또 한 번의 영광을 꿈꿨지만 현재 <로보캅> 리메이크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대신 <더 레슬러>로 확보한 입지를 이용해 그동안 때를 기다려야만 했던 <블랙 스완>의 영화화에 착수했다.

<블랙 스완>에서도 아로노프스키는 슈퍼히어로물에 대한 집착을 쉬이 놓지 못한 연출을 보여준다. <더 레슬러>를 통해 몰락한 영웅의 부활을 슈퍼히어로물의 공식으로 묘사했듯이 <블랙 스완> 또한 새로운 영웅, 특히 악에 눈 뜬 여자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린다. 완벽한 무대를 위해 강박증에 시달리던 니나가 마침내 흑조 연기에 성공할 때, 아로노프스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어 그녀에게 슈퍼히어로 유니폼을 입히듯 흑조로의 변신을 허락한다. “나는 장르에 능한 감독이 아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장르영화처럼 시도했을 뿐이다.” 그렇게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자신만의 영웅 신화를 완성했다.

허트로커 블루레이 구입 & 감상기

매치스틱 맨 감상기



리들리 스콧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는지요.
애플 팬이라면 그 전설적인 1984 광고를...
오랜 팬이라면 전설의 사이버 펑크 블래이드 런너를.
일반적인 영화 팬이라면 블록버스터와 멋진 영상미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느낌이 떠오르지 않을까 합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블래이드 런너, 블랙 레인, 글래디에이터, 한니발, 블랙 호크 다운, 아메리칸 갱스터, 로빈 훗 등을 보면 선이 굵고, 진지하고, 스케일이 있는 남성적인 영화들을 잘 만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에도 소규모의 그리고 매치스틱 맨이라는 숨겨진(?) 영화가 있습니다.
2003년작인 이 영화는 사실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리들리 스콧의 영화 중에도 무척 이색적인 작품입니다.
무려 반전과 코미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할까요.


국내에서는 케서방으로 유명한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이 영화는 사기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식스 센스의 성공 이후로 많은 반전 영화가 나왔고, 반전을 영화의 홍보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다른 반전 영화들과는 다르게 반전이라는 것을 영화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있습니다. 반전은 그냥 양념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할까?

그냥 로이(니콜라스 케이지)와 프랭크(샘 록웰), 그리고 로이의 딸 안젤라(앨리슨 로먼)의 3명이 거의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갑니다. 영화의 큰 축은 사기꾼 로이와 프랭크가 남들을 사기치는 내용입니다. 뭐! 남들에게 사기를 치는 영화들은 상당히 많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스필버그의 대표적인 사기극 영화 캐치 이프 유 캔과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지도!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그냥 드라마 같다면 매치스틱 맨은 좀더 유쾌한 분위기라고 할까?
규모가 작은 영화이지만 거장 답게 점프 컷을 활용한 연출이나 편집들과 영화 전개가 흡입력 있게 흘러가는 것을 보고, 거장은 무엇을 만들어도 거장이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깜짝 놀랄 반전이 일어나는데, 이 영화가 반전만을 위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그냥 반전을 알아차리는 사람이라도, 혹은 아니라도 영화 자체의 재미를 느끼는데에는 큰 관계는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원래 알아 주지만 우울증, 공황장애, 결벽증에 걸린, 쉽지 않을 듯한 캐릭터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실생활처럼 표현해 주었고, 샘 록웰과 앨리슨 로먼의 연기도 그에 못지 않게 자연스럽습니다. 특히나 놀라운 것은 앨리슨 로먼이라는... 그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반전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 앨리슨 로만이라는 배우를 조사하다 실제 나이를 알고 다시 한번 헉.. 하고 놀랐답니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괜히 앨리슨 로만 검색하지 말고... 그냥 영화를 본 다음에... 검색해 보세요.
극장에서는 놓쳐서 DVD로 구입 후 감상한 영화인데... 제게는 리들리 스콧이라는 감독이 이런 소규모와 스토리 위주의 작은 영화도 잘 만드는구나! 하고 알려준 멋진 영화입니다.

블랙 북영화 이야기





로보캅으로 헐리웃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던 네덜랜드의 감독 폴 베호벤..
헐리웃에서 많은 히트작을 만들었던 폴 베호벤의 영화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항상 소재가 자극적이고, 잔인한 표현을 즐겨하고... 또 광고가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고...
헐리웃에서 성공을 거뒀던 폴 베호벤이 블랙 북은 다시 고향인 네덜랜드에서 제작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007년에 국내에서 개봉됐는데... 폴 베호벤 영화치고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오래 상영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폴 베호벤의 팬이 아니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영화입니다. 비록 흥행에 큰 성공을 하지는 못했어도, 한번쯤은 볼만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절대 미성년자는 봐서는 안되는 영화입니다. 감독이 감독인지라.


2차 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여타 전쟁물처럼 화끈한 액션을 기대한다면 오산이고... 주인공이 여자이기 때문에... 나치 점령 지역에 사는 주인공 레이첼(캐리스 밴 허슨)은 가족들과 함께 탈출을 하기로 결심한 그날 밤, 나치에게 발각되어 가족들이 몰살당하고 맙니다. 혼자 살아 남은 주인공은 살아 남은 자의 아픔 속에서 독일군에게 복수를 하고자 스파이 짓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비록 독일군이지만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문츠라는 장교와 사랑에 빠지고...

여기까지 말하면 여자 스파이에 대한 이야기이구나... 전쟁과 로맨스를 섞고, 적군과의 로맨스를 곁들인 영화라고... 블랙 북은 이러한 그 모든 것을 잘 갖춘 영화입니다. 이미 정형화된 스파이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지만.. 그러나 폴 베호벤의 장기라고도 할 수 있는 스릴감과 긴장감은 그다지 큰 액션 장면이 없는 본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숨가쁘게 만드는 여러 사건과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장치들.. 그래서 스파이로 활동하는 레이첼의 행동을 볼 때마다 정말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역을 잘 소화해준 캐리스 밴 허슨의 연기도 아주 뛰어나구요.
이 영화는 전쟁 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소수의 영웅이 아니고, 그 전쟁이라는 참혹한 시대를 산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한 여성이 전쟁으로 인해 가족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죽고, 그래서 복수를 하기 위해 스파이 짓을 하고... 부모를 죽인 적과의 만남... 그리고 독일군 보다 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 블랙 북은 2차 대전이라는 전쟁 보다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것을 그린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


FPS 게임 등의 유행으로 전쟁을 오락거리로 생각하는 청소년들이 많은데...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조금이나마 생각케 하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참고로 주인공 레이첼(캐리스 밴 허슨)은 톰 크루즈 주연의 2차 대전 실화 발키리에서 그의 아내로 나옵니다. 블랙 북 역시 2차 대전 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구요.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소재를, 절대 평범하지 않게 만든 폴 베호벤 감독의 역량과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캐리스 밴 허슨이 돋보였던 멋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극장에서는 못보고, DVD로 본 영화인데... 감상 이후 너무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 추천합니다. 성인들에게만...

칼날 위에 선 찰나의 아름다움, <블랙 스완>

<이층의 악당>너무 많이 본 감독의 접붙이기 미학

<황해>과하고도 부족한 영화, 나홍진 감독


*이 글은 스포일러로 가득합니다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구남(하정우)이 죽는 장면이 아니다. 경찰의 추격을 피해 산에 숨어든 구남은 자신의 팔에 난 상처를 보며 순간적으로 놀란다. <황해>의 그 어떤 장면보다 하정우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바로 이때다. 온 세상이 자신을 잡기 위해, 또는 죽이기 위해 몰이사냥을 해올 때, 구남은 그런 상황에까지 내몰린 자신의 처지를 좀처럼 납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운명의 수레바퀴에 깔린 이의 소리없는 비명. <황해>의 절망적 정조는 구남의 목을 조이는 가학적 상황보다 비극적 운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리라는 최소한의 희망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황해>에는 세명의 남자가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로 <황해>는 구남의 영화다. 이는 <황해>가 죽음에 이르는 길 외에는 그 어떤 길도 허락하지 않는 허무주의적 정서로 팽배한 작품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남은 승자의 전리품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 죽음에 이르는 길을 연장하기 위해 뛰고 또 뛸 뿐이다.

최후는 예고되었다

<황해>는 그 시작에서부터 구남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다. 면 선생(김윤석)은 구남에게 사람 하나 죽이는 대가로 그가 진 빚을 탕감할 수 있는 금액을 제안한다. 구남이 바라는 것은 대변과 차변의 셈이 제로가 되는 출발선에 서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전부다. 구남이 몰랐던 것은 패자부활전은 이미 오래전에 박물관의 유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비관적 비전은 그리 낯설지 않다. 낙관보다는 비관을 즐기면서 악몽의 세계에 머물려 하는 것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반복되는 경향이다. 나는 이미 <부당거래>와 <초능력자>와 관련한 글에서 이러한 경향에 대해 지적한 바 있고(<씨네21> 780호), 굳이 그 내용을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황해>는 최근의 한국영화 중 가장 비정한 세계관을 앞세운 작품이다. 이러한 비정함은 인물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길을 봉쇄한 뒤, 예정된 운명의 길을 따라가도록 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부당거래>의 경우 선택에 대한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최철민(황정민)의 죽음은 구남의 죽음과 구별된다. 최철민의 죽음은 운명의 힘보다는 그의 행위(선택)에 의해 파생된 것처럼 보이고, 이는 ‘그 선택만 아니었다면’이라는 가정의 여지를 남긴다. 하지만 구남의 죽음은 동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구남이 죽음을 맞는 원인이 그의 잘못된 선택(청부살인에 응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죽음은 이미 예정된 운명 같은 느낌을 주면서 (최철민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것과 같은) 또 다른 가정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해>의 ‘개병이 돌고 있다’로 끝맺는 구남의 첫 내레이션, 즉 개병에 걸려 물어죽일 수 있는 건 모조리 물어죽이다가, 죽어서는 푹 삶겨져 누군가의 입에 물려야 했던 개 이야기는 너무 직접적으로 이후 내용을 요약하는 느낌을 준다. 죽어가는 구남, 또는 죽은 구남의 읊조림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내레이션의 직접적 효과는 구남의 발목에 결코 벗어날 수 없을 운명의 족쇄를 채워버린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에서 황해는 두번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영화는 바다에 버려지는 시체를 보여준다. 구남이 한국으로 밀항할 때, 배 안에는 누군가의 사진을 든 채 시름시름 앓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황해를 끝내 건너지 못한 채 바다에 버려진다. 구남의 시점숏처럼 포착된 이 장면에서, 그는 버려지는 여인을 통해 자신을 운명을 봤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구남 역시 유사한 숏의 배치와 구도를 통해 바다에 버려진다. 하지만 <황해>는 자신에게 부여된 가혹한 운명과 싸우는 영웅적 인물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인물의 의지도, 암담한 상황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라는 일말의 희망도 없이, 근 세 시간에 육박하는 시간 동안 물려죽을 운명을 신탁받은 구남의 생존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허망하고 지치는 일이다. 영화의 인물이 실험실의 쥐가 아닌 이상, 운명의 족쇄를 채운 채 그 행동을 가학적으로 지켜보는 일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은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황해>가 구남에게 가해지는 가학적 운명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하는 것에 의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단지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구남의 처연함은 조선족이라는 단순한 위치에서 비롯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물론 그는 어디까지나 조선족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일 수밖에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관객이 연민을 느끼는 이유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의 시작에서 끝까지 구남의 편은 아무도 없다. 그는 철저하게 혼자고, 아무도 그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구남을 표상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은 조선족의 역사적 위치를 가리키는 경계인보다는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위치를 함축할 수 있는 (조르주 아감벤의 표현을 빌리자면) ‘벌거벗겨진 인간’(Homo Sacer)일 것이다. 가령 소나 양은 희생 제물로 바쳐질 수 있는 반면, 지렁이나 작은 벌레들은 죽인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무가치한 존재다. 현실적으로 모든 생명이 존귀하다는 말은 수사로서만 가능하다. 현실적으로는 존귀한 생명과 그렇지 못한 생명을 가르는 경계가 존재하고, 그 경계선 너머에는 잉여 인간이라는 딱지가 붙은 버려진 자들이 존재한다. 죽여도 죄가 아니며, 신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질 수도 없는 무가치한 존재들, 그들이 바로 벌거벗겨진 인간들이다. 이는 구남이 한국사회의 조선족과 (영화에서 스치며 보여주곤 했던) 제3세계 노동자뿐만 아니라, 금세 벌거벗겨질 위험에 처한 인간들까지 환기시키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황해>는 생존하는 것 자체가 버겁기만 한 구남의 체험을 통해 벌거벗은 인간들에게 막다른 골목을 강요하는 한국사회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생존을 삶의 유일한 목표로 던져준 채, 그 이상의 어떤 희망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 <황해>에 담긴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그것은 타자의 시선에 비친 세계가 아니라 타자가 체험한 세계에 가깝다. 최근 한국영화에서는 구축숏(롱숏)의 역할을 생략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를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황해> 역시 그러한 경향이 있지만 영화 전반적으로는 꽤 중요한 미학적, 주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해>가 롱숏을 생략하거나 짧게 처리한 뒤 미디엄숏과 클로즈업으로 인물에 집중할 때, 관객은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대신 인물이 체험하는 세계를 함께 호흡하게 된다. 구남이 막다른 골목에서 또 다른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릴 때, 구남이 절망적으로 체험하는 세계는 고스란히 관객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황해>가 드러내는 한국사회

<황해>는 한국사회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려는 작품은 아니다. 이방인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세계의 상투적 묘사(일상적인 것을 이질적으로 경험하는)도 거의 없을뿐더러, 한국사회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몇몇 장면들은 현실적이기보다는 영화적인 느낌을 준다. 실제로 공권력에 대한 비판적 태도는 <추격자>와 유사하지만, 전작에서 이러한 태도가 극 속에 녹아 있었던 반면, <황해>는 구남의 도주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또는 좀더 직접적으로 냉소하기 위해서) 그 무능함을 과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황해>가 한국사회의 절망의 기운을 포착하고 있다면, 이는 (한국사회 전반을 구현하지는 않는다 해도) 벌거벗은, 또는 벌거벗을 인간들이 온몸으로 체험한 한국사회의 풍속화로서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가 ‘쫓는 자’가 아닌 ‘쫓기는 자’에 대한 영화여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구남과 함께 면 선생의 존재를 고려하면 <황해>의 조선족에 대한 입장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구남은 ‘경험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족 인물이다. 구남에게 몇푼의 돈을 건네는 김승현(곽병규)의 행동에서 잘 드러나듯, 우리는 일반적으로 조선족을 우리의 호혜를 기꺼이 받아야 하는 존재로 여긴다.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같은 민족이라 해도 동일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타자성을 지닌 그들을 익숙한 이미지로 길들이려 한다. 면 선생은 익숙함 속에 억압되었던 낯섦, 혹은 익숙한 조선족 이미지의 이면을 구현한다. 즉 한편으로 우리가 구남을 익숙한 이미지로 환원하려 한다면, 그 반대쪽에 위치한 면 선생은 이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면 선생과 그 일당은 자신들의 타자성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이 한국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더 당당한 존재로 그려놓는다. 가장 압권은 호텔 커피숍에서 면 선생이 김태원(조성하)에게 손을 내밀며, “한식구가 됐는데”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 순간, 한국과 조선족간의 일반적 관계가 역전된다. 면 선생이 공포의 대상이라면 그것은 단순히 족발로 사람을 때려잡아서가 아니라 익숙함으로 길들여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타자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왜 엔딩에 힘이 실리지 않았을까

구남은 아내가 딴 남자와 놀아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구남은 첫 번째 악몽 뒤에 빚쟁이에게 시달리고, 두 번째 악몽 뒤에는 면 선생을 찾아가 제안을 받아들인다. ‘돈’과 ‘치정에 얽힌 아내’, 그것이 구남이 황해를 건넌 이유고, 이는 이후 면 선생과 김태원이 각각 황해를 건너는 이유로 재등장한다. 면 선생은 돈이 될 만한 냄새를 맡고 황해를 건너고, 김태원은 치정 때문에 (상징적 의미에서) 황해를 건넌다. 그러니까 김태원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돈에 얽혀 움직이고, 면 선생을 제외한 이들은 치정에 얽매어 있다. <황해>는 살인극으로 시작해 사회비판적 영화를 경유한 뒤 치정극으로 끝맺는 영화다. <황해>는 사건의 원인에 비해 결과(와 그에 이르는 과정)가 너무 파국적이거나 과잉된 것처럼 느껴진다. 또는 그 파국적 결말에 비해 그 원인이 너무도 초라하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초 원인(행위)에 비해 과도한 결말이나 의도와 달리 걷잡을 수 없이 꼬이는 사건과 인물을 다루는 최고 대가는 코언 형제이고, 실제로 <황해>는 코언 형제 영화의 하드보일드 버전(또는 하드고어 버전)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우리가 경험했던 비정한 악몽이 치정의 결과였다는 사실이 진실의 탈을 쓰고 밝혀질 때, 이는 최대한 좋게 말한다면 코언 형제식의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세계(인물 위로 보이던 아름다운 하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무력한 개인을 무심히 바라보는 응시의 주체이지, 결코 개인을 잡아먹겠다고 아가리를 벌리는 가학적 운명의 세계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결말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장르가 스릴러이고, 치정만큼 얽키고설킨 인물관계를 보여주는 설정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 지독한 풍속화에 어울리는 적절한 선택인지는 의문스럽다. 더군다나, 구남에게 의뢰한 자가 김태원이 아니라는 사실과 또 다른 살인의 의뢰자인 은행원과 교수 부인의 치정까지 덧입혀지면서, <황해>의 계속되는 반전은 삶의 아이러니를 부각하기보다는 반전을 위한 퍼즐 게임으로 영화를 축소한다. <황해>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가혹한 세계는 아이러니한 삶의 결과나 “여기에 부부가 몇이나 될 거 같니”라는 식당 주인의 말에 담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쩌면 치정에 얽힌 문제는 치정 자체보다 그와 얽힌 모든 진실을 반전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있을 것이다. 실제로 치정에 얽힌 진실은 반전의 형식으로만 그 실체를 드러낸다. <황해>의 스펙터클에 대한 강박은 자본의 힘이 더해지면서 스케일의 스펙터클을 제대로 발휘한 반면, 반전에 대한 강박은 내러티브의 결점을 만들고 자신이 그렸던 풍속화를 스스로 손상하는 결과를 낳는다. <황해>는 그 엔딩에서 죽은 줄 알았던 부인의 귀향을 덧붙인다. 이 장면은 내러티브적인 동기부여로 봤을 때는 현실이고, 전반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는 상상에 가깝다. 그것이 꿈이든 현실이든 간에, 아마도 나홍진은 그것이 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구남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엔딩 자체는 존중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는 반전의 연쇄 속에 제시됨으로써 감독의 의도만큼 힘을 갖지는 못한다고 느꼈다. 이러한 면에서 이 엔딩은 어디까지나 환상으로 머물고 만다. 구남이 아닌 감독의

'황해', 하정우가 제발 좀 죽었으면 좋겠다

황해
10점




황해
 / 영화  / 감독 각본 나홍진 / 한국 (2010)

조금 늦게 '황해'를 보고 왔습니다. 해가 가기 전에 꼭 보고 싶었던, 그렇게 2010년의 마지막 영화가 되어야 할 영화였는데, 잠시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어느덧 해를 넘겨 새해 첫 영화가 되고 말았네요. 새해부터는 좀 더 부지런히 영화를 챙겨보리라 마음 먹었음에도, 새해도 열흘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첫 영화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이제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게으름을 만회하는 유일한 방법일테지요?

야심찬 남자, 나홍진

잘 아시다시피, 나홍진은 '추격자'의 감독입니다. 그 유명한 '추격자', 그 대단했던 '추격자', 말입니다. '추격자'처럼 데뷔작 하나로 감독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사례가 또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내에서는 비슷한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봉준호도 박찬욱도 데뷔작만으로는 이만큼 주목받지 못했으며, 제법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는 김지운이나 최동훈의 데뷔작 역시 이 정도의 찬사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정도면 충분히 견줄만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워낙에 그 성격이나 의미가 다른 영화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성공적이다 못해 충격적인 데뷔를 마친 나홍진의 다음 작품이 과연 무엇일까, 이것은 영화인들 뿐 아니라 조금 과장을 보태서 영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관심거리였습니다. 그러한 과도한 관심과 애정 탓인지, 나홍진은 쉴 틈 없이 곧바로 다음 작품 준비에 들어갔고, 불과 몇달 후 '살인자' 라는 이름으로 그 두번째 작품의 실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연변출신 조선족이 서울로 흘러들어와 살인을 저지르고 쫓기게 된다, 는 아직 막연하긴 하지만 역시 나홍진답다는 생각이 드는 스토리 라인은 물론이고, 추격자의 또다른 공신이자 성과물들인 김윤석과 하정우가 또다시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는 소식까지 연이어 전해지자, 그 기대는 더욱 더 커져만 갑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추격자'의 아류작들에게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러갔습니다. 그럼에도 '살인자'에 대한  소식은 좀처럼 업데이트 되지 않았더랬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살인자'에서 '황해'로 바뀌었고, 촬영이 시작되었지만 감독이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려 예정보다 촬영기간이 길어지고 제작비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더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 정도가 전부였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르게 나홍진이라는 이름을 잊어갔고, 그를 잊지않고 기억해주는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믿기보다는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홍진도 별 수 없다고, '추격자'는 운이 좋았던 거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나홍진은 그러한 세간의 망각과 소문들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묵묵히 영화를 완성해 내는데만 집중했고, 마침내 그 결과물을 공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들었던 바로 그대로의 줄거리를 가진 영화, '황해'였습니다. 그동안 못했던, 하고싶은 말들이 넘치도록 많을 법 하지만, 나홍진은 영화 속 구남이나 면가처럼 통 말이 없습니다. '남자들의 영화'를 만든, 남자답게 그저 눈빛으로...영화를 보라고, 거기에 나의 말, 나의 답이 있다고 답할 뿐입니다. 그러니 별수 없지요. 저 오만할 정도로 넘쳐나는 자부심과 입을 닫고 있어도 숨겨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야심을 확인하려면, 영화를 봐 볼 밖에요.

야심의 증거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홍진이 가진 야심이란 작가로써의 그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증거는 바로 챕터 나누기 였습니다. '1. 택시운전사', '2. 살인자', '3. 조선족', '4. 황해', 이런 식이었습니다. 예술영화 감독들이나 시도한다는 챕터 나누기를 보란듯이, 대놓고 한 걸 보니 나홍진은 '추격자'가 장르영화로만 취급받은 것이 못내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그 결과는 그의 의도대로 된 듯 합니다. '추격자'에서라면 특유의 속도감과 리듬을 끊어먹는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되고 말았겠지만, '황해'에서 챕터 나누기는 제법 잘 어울려 보입니다. 애초부터 늘어질대로 늘어진 만연체의 영화인 '황해'였기에 대체 영화가 얼마나 진행된 건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는 걸 가르쳐주는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니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나홍진은 챕터 나누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예 대놓고 이 영화는 소설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제대로 영상화해 낸 예술영화라는 사실을 증명해내고 싶었나 봅니다. 그 증거는 바로 주인공 구남의 꿈과 무의식을 그것도 무려 모노톤의 차별화된 영상으로 시시때때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평범한 리얼리즘만으로는 스스로가 작가라는 걸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듯, 주인공의 표정과 대사만으로 주인공의 의식세계를 묘사하는 것은 영화예술의 장점을 부정하는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한 듯, 나홍진은 너무나 친절하게 주인공을 괴롭히는 아내에 대한 망상을 쉬지않고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관객들에게 알려줍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작가로써의 야심이 얼마만큼 큰 지 알 수 있지 않나요?

야심은 하나가 아니다
제가 너무 비꼬았나요? 어느 정도는 의도했던 것이니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꼭 이러한 작가로써의 욕심이 거슬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러한 시도들은 '추격자' 같은 장르 스릴러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을 보기좋게 배반하며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줬을 뿐 아니라 나홍진이 가진 진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괜찮은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이러한 작가로써의 야심에만 집중하고, 그렇게만 밀고 나갔다면 '황해'는 이론의 여지없이 흥행감독 나홍진이 드디어 작가가 되었음을 알리는 훌륭한 증거물이 되어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홍진의 야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홍진은 작가의 칭호를 탐내면서도 흥행감독이라는 타이틀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바로 스케일 큰 액션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불러왔고, 이러한 스케일은 스토리와 시종일관 상충하며 지독하고 징그럽도록 더해져야 하는 감정들을 자꾸만 상쇄시켜버리고 맙니다.
구남의 절망스럽다 못해 죽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상황에 숨막혀하며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어야 할 시점에서 수십대의 차가 뒤집히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죽어 자빠지는 현란하고 스타일리쉬한 액션장면들이 뜬금없이 튀어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구남은 여지없이, 보란듯이 죽을 위기를 벗어나 유유히 탈출에 성공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방금전까지의 처참했던 감정상태에서 벗어나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영화를 보는게 맞는건지, 애매해져 버리고 맙니다.

최근에 본 만화의 제목처럼 슬프고 답답하기는 한데, 어딘가 모르게 '울기에는 좀 애매한'...혹은 스펙터클하긴 한데, 어딘가 모르게 마음껏 통쾌해 하기에는 또 애매한...그런 어정쩡한 상태 말입니다. 이는 물론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인공이 막다른 골목에서 감정적으로 어떠한 돌파구도 없이 짓눌려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면, 카체이서 장면을 비롯한 스케일 과한 액션시퀀스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장면들에서 마치 액션영웅이라도 된듯 보란듯이 위기를 헤치고 결국에는 주인공이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구남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저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영화가 그렇게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하정우, 즉 구남이 제발 죽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살인을 교사한 실체가 차츰 밝혀지고, 사건과 음모의 전모를 구남이 알게 됨으로써, 구남은 점점 더 살아남으려는 이유를 잃게 됩니다. 즉 구남은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중국에 살아서 돌아가더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살아있는 것보다 나은 상태, 굳이 살아있을 이유가 없는 상태가 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구남에게는 출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공감되었기에 저는 차라리, 구남이 어서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더 편할텐데 왜 저렇게 살라고 몸부림을 치는가, 그게 안타까울 정도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나서도 하루종일, '황해'가 좀 더 작은 영화로 완성되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토리와 감정에 어울릴만한, 리얼리티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좀 더 소박하고 디테일한, 규모보다는 밀도로 승부하는 액션시퀀스들이 배치되었다면 면가의 악다구니와 구남의 처절한 생존본능이 더더욱 잘 살면서 감정과 액션이 행복하게 조우하는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관객들은 그 세밀한 밀도에 더더욱 긴장하고 숨막혀하며 구남과 면가가 처한 상황들에 더더욱 이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랬다면, 구남이 기어이 살아남는, 그렇게 살아남음으로써 더더욱 죽음만도 못한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아이러니가 더더욱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싶었던 겁니다.
지금 영화 속의 구남의 액션디자인은 처절하고 징글징글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매끈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일당백으로 어마어마한 적들과 대적해내는, '액션히어로'의 그것입니다. (이는 구남에 비해 훨씬 처절하고 적나라하며 무자비하게 설계된 면가의 액션디자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경우가 조금 다르고, 구남에 비하면 훨씬 용인 가능한 스케일과 강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면가의 액션씬들이 그 정도일 필요가 있었는가 생각했을 때는 쉽게 동의되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물론 감독은 이렇게 스케일을 키움으로써, 구남이 대적하는 (결국에는 면가의 적이기도 한) 그 적들의 실체가 대한민국 자체, 대한민국의 천민 자본주의 자체라고 말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더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뒤에 가서 밝혀지는 살인교사의 이유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그것입니다. 즉, 구남을 시종일관 괴롭히는 아내에 대한 애증과 김태원이 살인을 교사하게 만든 정부(情婦)에 대한 감정이 사실 같은 것이라는 것이지요. 구남이 김태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궁극의 승자인) 살해당한 승현의 아내에게서도 같은 모습을 발견하도록 함으로써 감독은 구남을 더더욱 절망시키고, 감정적으로 도저히 회생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 했던 것임에 분명합니다. 구남은 자신이 대체 누구와 무엇때문에 이렇게나 처절하게 싸웠고,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몸부림 쳤는지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어지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나 결론을 이렇게 인간 본연의 문제로 몰고감으로써, 무자비한 자본, 무기력한 공권력, 불평등한 계급 등 감독이 영화적 구조 안에 애초부터 깔아놓았고 대립시켜 놓았던 가치들이 퇴색되고 이 사회속에 내재된 문제들은 결국 인간 본연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조금은 이상하고 무책임한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즉, 구남이 자신의 적들에게서 '인간적인 동질성' 을 느끼는 순간, 영화가 2시간 반동안 제기해놓았던 문제들에 대한 결론이 과연 무엇인지 모호해지고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구남도 면가도 태원도 승현의 아내도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행복하고자 몸부림치지만 자본주의에 속해 있는 한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끝내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를 너무나 명징하게 보여주는 결말이며, 이것이 바로 감독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홍진 스타일'을 보고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는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다고, 그것이 바로 나홍진이 작가일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앞서 언급한대로...'황해'가 가진 스타일과 감정, 혹은 스타일과 메시지 혹은 스타일과 스토리의 상충과 그로 인한 혼란과 한계가 너무나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쉽지만, 나홍진에 대한 평가를 다음 작품으로 미루려 합니다. 감독이 절제되지 않은 야심을 극한까지 밀어붙였을 때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황해'는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였지만, 이러한 시도는 한번이면 족할 터입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부디 영화 외적인 것들과 영화 내적인 것들이 행복하게 조우하며, 스타일이 곧 감정이자, 메시지이자, 스토리인 영화를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스케일에 집착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비록 작고 소박한 영화더라도, 이것이 바로 나홍진 스타일, 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며 고개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이러한 기대는 사실 아무에게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홍진이라면, 나홍진이니까, 가능한 기대이며 기다림인 것입니다.

여전히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판했지만 비난할 수는 없는 영화,  '황해'였습니다

꼴리는 한국 영화

얼마전 트위터에서 꼴릿한 한국영화 뽑아 달라는 본인의 요청에 40여명이 멘션을 보내주셨다.
정리하고 보니 화끈한 비주얼 보다는 내러티브 스토리가 있는 떡이 역시 꼴림 포인트가 높다는걸 알 수 있었다.
그럼 시작.

<1표>

바람난 가족.
떡영화의 대가 임상수 감독의 출세작. 
봉태규의 야르~ 보다 성지루의 옥상씬이 기억에 남는다.


미인.
여균동 감독이 예술 영화를 찍어 놔서 떡신자체는 지루 그 자체였지만 이지현의 스펙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이지현은 후일 누드사진을 찍으며 재기를 도모했지만 사기를 당했다는게 밝혀져 안타까움 그 자체.
참고로 남자배우는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야구하는 오지호. 
젊은 오지호를 볼 수 있는데 미남은 숙성되니 더 맛이 좋아지더라.. 추남은 늙어도 역시 추함.
이지현이 이대로 사라진다면 정말 아깝다.


음란서생.
음란서생의 300만 관객동원 실패의 원인은 여배우가 끝내 벗지 않음이었다는걸 캐치한 김대우 감독은 
후속작 방자전에서 주연 여배우를 확실히 벗김으로서 개봉 17일만에 200만 돌파라는 순조로운 길을 가고 있다.
음란서생을 꼽으신분은 조선의 왕비가 원나잇에서 그런 아크로바틱을 펼치는게 인상적이었다는 코멘트를.


하녀.
그러고보니 한 감독의 영화가 두번 나오는건 임상수뿐이다. 역시 떡무비의 달인. 떡달 임상수 감독 답다.
빨대 이정재 선생님의 나르시즘이 꽉 찬 그 씬은 남자라면 꼭 따라해봐야 할 것 같은 충동을 느끼지 않나?
자극적인 대사와 클로즈업에 의한 에로틱한 분위기의 떡씬들은 짧지만 굵었다.


살인의 추억.
미치도록 하고 싶었다.. 가 아니라 살인의 추억이라니 번지수를 잘못 찾은거 아뇨?
허나 분명히 나온다. 송강호가 이 시대 힘든 가장의 떡치는 법을 똑똑히 가르쳐주는 훌륭한 영화다.
누워서 손가락 까딱하지 않으면서 되려 전미선에게 똑바로 해라고 살짝 버럭질 까지 하는 송강호를 보면 
87년도엔 인터넷이 없었지만 낭만이 있었구나 라는 훈훈함이 감돈다. 아아 떡의 추억!
추천한 분은 전미선의 팬이 아닌가 의심되는데 그렇다면 전미선 첫 단독주연 연애를 추천한다.

봉테일 봉준호는 마더에서 끝말잇기 떡을 연출하며 그 재능을 또 한번 보인 경력이 있다.
연애.
본인의 자추작. 
아무도 이 영화의 존재를 모르는것 같은데 정말 이쁘게 늙고 계신 전미선님의 첫 단독주연 영화.
팬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가 아닐수 없다. 파격적인 섹스신 보다는 야리꼬리한 상황으로 꼴릿함을 높혔다.


마법의 성.
이후 구본승과 김지은을 연예계에서 사라지게 만든 정말로 마법같은 영화.
김지은은 몇년만에 이름을 강예원으로 바꾸고 새로 시작하려고 하는데 영화사이트에선 이미 김지은을 강예원으로 바꿔놓았더라.
이름을 바꾼 의미가 없잖어..


애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이은 성현아의 떡무비 2탄.
정확히는 베드신이 아니고 야외에서 서서 뒤치기 이런 씬들이 호평을 받은것 같다.
하지만 배우 성현아 버프는 없었다. 조금 더 살이 올랐으면 좋았을텐데.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정보석과 김성미의 베드씬을 보면 "저.. 정보석!!"  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고 추천하셨다.
본인은 못 본 영화지만 왠지 꼭 봐야 할 것 같은 강력한 추천사. "저.. 정보석!!"


애란.
드디어 나이가 보이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릴적에 봐서 그런가 애란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추천.
모두들 각자 하나씩 그런 영화가 있다는건 모두가 부정치 못할것이다.
본인은 실비아 크리스텔 누님의 개인교수가 그러하다. 
실비아 크리스텔 회고전을 하겠다는걸 아직도 못하고 있는 게으른 나.


너에게 나를 보낸다.
꿀벅지니 글래머니 신체부위를 부각한 미녀들이 지금은 많지만 그 시초는 정선경이 아닐까?
90년대에 엉덩이가 예쁜 여자라는 시대를 앞서간 별명을 가진 여자가 바로 정선경이었다.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의 이 명대사가 모든걸 말해주지 않나.
 
"이렇게 잡기 좋은 엉덩이는 처음이야"
"모두가 그렇게 말해요"


오! 수정
홍상수와 이은주의 만남이라.. 
어린나이의 여배우가 선택할만한 시나리오가 아니었을텐데 진짜 배우에 대한 갈망이 그만큼 컸던걸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찌질한 정보석이 너무나 오버랩되서 베드신에 감동까지 느낄수 있었던걸로 기억이..


연애의 목적.
노출도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대사도 일품이었던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는 
남녀노소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저기.. 딱 5초만 넣고 있을게요" 
"미쳤어요~!?" 
"딱 5초만!"

참고로 딱 5초만.. 할때 극장에서 여자들이 다 비명질렀다. 아 그 상황 진짜 웃겼는데.. 
근데 저 대사 먹혀줄때는 사실 꽤 먹히는데 기분 나쁜 여친에게 떡쳐달라고 매달리며 쓰다간 아웃.

이 영화는 여자분이 추천하셨다. 강혜정의 허리놀림이 인상적이었다고.
으음 확실히 한국 떡무비 역사를 언급할때 연애의 목적은 꼭 넣어줘야 하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2표>

금홍아! 금홍아!
아니 갑수형님이 금홍아! 금홍아! 의 남주였단 말인가.. 하도 예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하구나.
두 분이 추천하셨는데 한 분은 웃겨서 한 분은 한국영화 최고의 베드신이라고, 
어떤 의미 인지는 직접 봐야 확인 가능하겠다. 

이지은은 세기말 이후로 소식이 없는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세기말도 굉장히 꼴릿한 영화였다.
노랑머리 이재은의 원조교제 욕실 뒤치기씬과 그 표정연기가 가히 일품인걸로.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충무로의 또 하나의 봉, 봉만대 감독은 굉장히 입지적인 인물이다.
에로영화판에서 놀다가 충무로에 입성하여 화제가 되었고 그 첫번째 작품이 바로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오지호랑 마찬가지로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야구하고 있는 벡터맨 김성수의 7년전 모습과
작년 아내의 유혹에서 사자후를 터트리던 버럭 애리 김서형의 리즈 시절, 섹시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온갖 다양한 떡씬이 나온다. 인상에 남는건 고속버스안에서 오랄해주는 김서형.
야외 화장실에서 치다 타인에게 들키자 김성수에게 엄청 화를 내는 모습등 리얼한 우리네 삶을 그려냈다.

그래봤자 재미없는 에로영화 감독 수준 아니냐고 폄하하는 당신께.
봉만대 감독은 후속작으로 신데렐라를 찍었는데 거기 여주인공은 바로 신세경.
이만하면 충분히 부러워해도 될 것 같지 않나.


박쥐
이 티저포스터는 야하다고 공식에서는 다리를 훌렁 날려버려 굉장히 재미없는 포스터가 되버렸다.
옥빈이의 ㅎㅁㅈ이 아쉽다는 세간의 평도 있지만 신부를 덮쳐먹는다는 파격과 기괴한 떡장면들.
"나 부끄러움 타는 사람이 아니예요" 같은 대사의 재미도.

여자분이 추천해서 신선.



<3표>



한 분께서 조건에 맞춰 결혼한 남편이 사준 신혼집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이 항가하시다고 했는데
기억에 엄정화 집까지 가서 치는 씬은 없었다고 봅니다. 제 기억이 틀렸을수도 있고..
돈 많이 벌어 봤자 다 필요 없다 현실은 떡 잘치는 감우성에게 마음 주고 몸 준다능 하며 벌벌 떨게 한 아주 무서운 영화.

페이스 오프니 뭐니 까도 엄정화의 지금 페이스는 꽤 맘에 들어했고
떡씬들도 옷을 적당히 걸쳐 입고 재빠르게 하는 본인 취향의 떡영화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유하 감독은 결혼하고 바로 찍은 영화가 이거라서 마누라한테 엄청나게 까였다는 말도..
그러고 보니 유하 감독의 쌍화점을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는게 신기.



물론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키스가 보통 영화라면 쌍화점은 TOP긴 하지만..
송지효와의 떡씬이 펠라도 있고 69도 있고 게다가 상황자체도 존나 꼴릿한 영화가 쌍화점이니 기회 나면 보시길.



청춘
배두나가 벗었다! 했지만 대역이라 배두나의 첫 공식적인 가슴 노출은 복수의 나의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영화제목 답게 청춘이 할 수 있는 떡들이 다채롭게 나오는데 많은 사람들은 윤지혜의 비닐하우스씬이 기억에 남은듯.
윤지혜는 예의없는것들 에서 신하균과 한층 더 강도높은 섹스신을 찍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고.

청춘엔 여러 스쿨떡이 나오는데 고교시절 동급생끼리의 떡, 여선배와 남후배의 떡, 여선생과 남제자의 떡등등..
배두나는 떡치는 와중에 시종일관 예전 그녀하고는 요렇게 했냐 저렇게도 해봤냐 막 물어보는데 저런 친구들 의외로 많지요.
청춘까지 세분이 추천.



<4표>

올드보이.

금단. 터부. 자세한건 생략한다.
본인이 너무나 좋아라 하는 명작영화.



<5표>


해피엔드.영예의 1등. 무려 5분이 추천해주셨다.
우리 불쌍한 민식횽을 냅두고 마누라가 젊은 남자랑 아주 제대로 바람나는걸 보여준다.
전도연이 시큰둥한 얼굴로 남편 민식횽과 의무방어전을 치루고 주진모랑은 책상 물건 다 떨어트리며
파워쎆쓰를 하는 모습에는 차마 스크린에서 시선을 돌릴수 밖에 없었다.. 아 안돼 전도연 ㅆㅂㄹㅇ!!

그러고보니 올드보이에 이어서 민식횽이 유일한 두작품이 나온 남자배우로.. 아 송강호도 있네.
강호형은 고추도 깠지요. 아직도 가끔 송강호 고추크기라는 검색어로 사람들이 들어오기도 해.
두작품 나온 유일한 여자배우는 전도연. 과연 칸느의 여왕.

이렇게 해피엔드가 영예의 1등을 차지하고 말았다.
본인에게는 아 해피엔드가 그렇게 섹스신이 대단했던가?
했지만 많은 이들에겐 꽤나 강렬하게 다가온 모양.
아마 인기 많던 전도연이 처음으로 파격 노출 섹스신을 찍는다고 해서 대중들의 관심을 많이 모았다..
고 나름 결론을 내렸다. 조여줭이 벗은것과는 경우가 좀 다르겠지 아무래도.

또 기회가 있다면 좀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
남자들이 뽑은 떡 영화 10,
여자들이 뽑은 떡 영화 10,
이렇게 한 번 뽑아 보고 싶누나.



+
그 외 순위와 상관없는 추천들.


어린신부의 성공에 고무되 재빠르게 제작되었지만 재빠르게 망한 여고생 시집가기.
영화 마지막에 티티엘 소녀 임은경과 은초딩이 진짜로 떡을 친다.




한 소년에게 백발모에를 가르쳐 준 우뢰매의 데일리 누나 천은경씨는
백발마녀전의 임청하를 제외하고 그만큼 백발이 잘 어울리는 배우가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





에바 tv판 목소리만 나오던 카지와 미사토의 섹스신.
찢어진 콘돔과 재떨이의 담배로 분위기를 살리고 신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그 장면에 야릇한 감정을 느꼈을 15세들이 많았을 것.
"이상한거 넣지마" 라는 미사토의 대사에 !! 하던 순진한 기억이 새록 새록.
우리는 이렇게 2D로 섹스를 배웠습니다. 글과 그림으로 먼저 섹스를 배운 세대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은 15년전에 공중파에서 저런 장면이 나온다 이거지.

에바는 최근 tv판 다 달리고 극장판까지 보고 느낀건데 역시 굉장히 성인지향적인 아니메.
성인지향적이라는게 요즘 애니처럼 빤쓰 막 보여주고 가슴 출렁이 아니지고 보고 있으면 아 존나.. 할 내용들로 꾸역 꾸역.
으 이런걸 보고 컸으니 성격이 으그그 해진게 이해가 간다. 내 사춘기를 돌려내라고..

그리고 미사토도 꽤나 정말 좋아했다는걸 다시 깨달았다.
딱 어린 시절에 아 저런 누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캐릭터 그 자체임.. 판타지 누나.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젊드라고! 극장판에서 목소리가 제일 늙게 바뀐게 미사토야! 으허허..

게다가 tv판 극장판 보니까 아 미사토 진짜 개멋짐요.
진짜 어른 그자체임. 신지는 아 진짜 완폐아.. 완전 폐인 아새끼고..
그러니까 결론은




에바 만세!
아스카 만세!

블랙 스완 - 압도적 연출, 혼신의 연기

젊은 시절 무용수였던 어머니 에리카(바바라 허시 분)와 함께 사는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는 노심초사 끝에 ‘백조의 호수’의 주역으로 발탁됩니다. 하지만 백조에 비해 악역 흑조를 제대로 연기하지 못한다는 단장 토마(뱅상 카셀 분)의 지적에 니나는 전전긍긍하며 극심한 불안에 시달립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은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와 흑조, 1인 2역을 연기하기 위해 중압감에 시달리는 광기 어린 여성 무용수의 심리를 극적으로 포착합니다. 주인공 니나는 자신과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자에 밀려나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니나의 집착은 출혈이 수반될 만큼 등을 심하게 긁는 행위나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나 자신을 저주하는 듯한 환상으로 연결됩니다. 러닝 타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핸드 헬드는 발레의 역동성과 무용수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만 동시에 안정을 찾지 못하고 뒤흔들리는 니나의 심리 상태를 상징합니다.

광기 어린 예술가의 정신 분열이라는 소재는 영화의 단골 소재이기에 ‘블랙 스완’의 전반적인 서사는 전형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연출력과 나탈리 포트만의 혼신의 연기가 어우러져 엄청난 흡인력을 발휘합니다. 심약한 여성 무용수가 남성 단장, 동료 무용수와 미묘한 감정을 형성하기에 멜로로 흐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나 오히려 주인공의 마음을 옥죄는 원인으로 부각시킵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공간적 배경이 극장과 집 등 실내에 국한된 ‘블랙 스완’은 호러와 미스테리의 요소를 갖춘 연극적인 스릴러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꼼수 같은 반전에 의존하지 않고 직선적이며 우직하게 결말로 쇄도하는 것이 ‘블랙 스완’의 매력입니다. 해피 엔드에의 타협과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고 절정의 순간 파국에 치달아 엔드 크레딧을 올림으로써 강렬한 여운을 남깁니다. 자신의 목숨과 예술의 완성을 맞바꾸는 예술가의 혼이라는 소재는 일반적이지만 그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 ‘블랙 스완’은 압도적으로 힘이 넘칩니다. 대중 앞에 서며 자아 분열에 시달리는 여주인공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곤 사토시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퍼펙트 블루’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자아 분열과 고통의 원인, 그리고 결말은 ‘블랙 스완’과는 다릅니다.

의상과 분장, 소품을 중심으로 관람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니나가 흰색 의상을 즐겨 입는 것은 백조의 이미지를 강조하면서도 흑조 연기에 취약한 약점을 시사하는데, 동료이라 라이벌 릴리(밀라 쿠니스 분)로부터 검정색 옷을 받아 입은 후 흑조 연기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클라이맥스의 니나의 강렬한 얼굴 분장과 온몸을 흑조의 검은 깃털이 잠식해가는 CG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니나의 집 욕조에는 백조 그림이 눈에 띕니다. 니나의 휴대 전화와 오르골은 ‘백조의 호수’의 테마가 장식하는데 휴대 전화 벨 소리와 오르골의 테마는 니나의 신경을 자극합니다. 참다못한 니나는 오르골을 내던져 박살내지만 하반신 밖에 남지 않은 오르골의 무용수 인형은 여전히 춤을 춥니다. 이는 죽음의 순간까지 춤을 추어야 했던 니나의 운명을 직접적으로 암시합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연기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첫째는 정신 분열적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며 둘째는 무용수로서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아역 시절부터 연기력이 입증된 나탈리 포트만은 4살부터 13살까지 발레를 익힌 경험과 ‘블랙 스완’을 앞두고 하루 5시간의 맹훈련을 바탕으로 극중에서 정신 분열에 시달리는 무용수의 연기를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나탈리 포트만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우연이 아닙니다.

프랑스 출신의 발레단 단장 토마 역의 뱅상 카젤은 야심 넘치는 바람둥이 보스의 이미지에 부합됩니다. 니나에 갑작스레 키스하는 등의 장면에서 과연 토마가 니나를 유혹하는 것인지 아니면 니나의 잠재된 연기력을 끌어내는 것인지 불분명한, 속내를 알 수 없는 괴팍한 캐릭터이기에 니나는 토마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더욱 혼란스러워 합니다. 은퇴 이후 폐인이 된 발레리나 베스 역의 위노나 라이더는 배우의 실제 삶과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겹쳐져 아련함을 자아냅니다

더 브레이브 - 코엔 형제, 원숙의 경지

14세 소녀 매티(헤릴리 스타인펠드 분)는 악당 톰(조쉬 브롤린 분)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악명 높은 보안관 루스터(제프 브리지스 분)를 고용합니다. 텍사스의 레인저 라뷔프(맷 데이먼 분)가 가세해 세 사람은 톰을 찾기 위해 인디언 마을로 향합니다.

1969년 존 웨인이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로도 알려진 찰스 포티스의 원작 소설을 코엔 형제가 다시 영화화한 ‘더 브레이브’는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보안관이 악당을 쫓는 서부극이지만 서부극의 전형을 과감히 타파합니다. 우선 주인공이 서부극과는 거리가 먼 14세의 소녀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소녀를 돕는 보안관이 잘 생기고 멋들어진 젊은 남성이 아니라 늙고 추레한 알코올 중독자라는 점도 다릅니다. 젊은 보안관도 등장하지만 여성을 존중할 줄 모르며 하늘 높은 자부심에 비하면 총잡이로서 기량이 의심스럽다는 점 역시 서부극의 전형과는 동떨어져있습니다. 액션보다는 엄청난 양의 대사를 바탕으로 서사가 전개된다는 점 역시 독특합니다. (‘더 브레이브’의 엄청난 양의 맛깔스러운 대사는 ‘소셜 네트워크’에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세 명의 주인공의 개성을 찬찬히 뜯어보면 ‘더 브레이브’는 서부극보다는 서부를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코엔 형제의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범죄자로 가득한 남자들만의 거친 세계를 여주인공이 헤쳐 나간다는 점에서는 ‘파고’를 연상시킵니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서사는 코엔 형제의 장기입니다. 매티가 어렵사리 복수를 쟁취하지만 그 대가를 엉뚱한 곳에서 비싼 값에 치르는 것 또한 삶의 아이러니를 강조하는 코엔 형제의 영화답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어 여운을 남긴 것과 같이 ‘더 브레이브’도 라뵈프의 후일담을 소개하지 않아 여운을 자아낸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선악이 불분명한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긴장과 유머, 잔혹한 폭력 속에서도 빛나는 클라이맥스의 감동적인 질주 장면의 동화적인 연출은 코엔 형제의 전매특허입니다. 서부극의 전형을 깨뜨리면서도 관객의 서부극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총격전 장면의 연출 기교와 감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인연과 죽음에 대해 관객으로 하여금 음미하게 하는 쿨하면서도 따스한 에필로그는 코엔 형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 원숙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입증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더 브레이브’는 서부극의 틀을 빌려 아버지의 죽음을 뒷수습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자립심 강한 소녀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윈터스 본’을 연상시킵니다. 폭력적인 성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성장하는 소녀 가장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윈터스 본’과 ‘더 브레이브’는 유사합니다. 소녀를 위협하는 듯하면서도 실은 보호하며 부성의 부재를 메운다는 점에서 ‘윈터스 본’의 티어드롭과 ‘더 브레이브’의 루스터는 비슷합니다. 물론 코미디와 액션의 요소가 강해 상대적으로 오락적인 ‘더 브레이브’와 하드보일드 정극에 가까운 ‘윈터스 본’의 무뚝뚝한 분위기는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브레이브’의 매티는 수다스럽고 과장된 캐릭터이지만 ‘윈터스 본’의 주인공 리는 차갑고 과묵한 소녀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더 브레이브’의 매티로 분한 헤일리 스타인펠드와 ‘윈터스 본’에서 리로 분한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는 놀라우리만치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로 변화합니다. 평소에는 위스키에 찌든 주정뱅이 늙은이에 불과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눈에서 광채를 뿜어내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합니다. 서부극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맷 데이먼이 평소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의상과 분장으로 등장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것도 흥미롭습니다. 세 주인공이 러닝 타임 내내 뒤쫓는 톰 역으로 조쉬 브롤린이 분해 클라이맥스에만 출연하는데, 내내 얼굴과 정체를 숨기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의 면전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분했던 ‘세븐’의 존 도우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본편과는 무관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제 ‘True Grit’가 ‘더 브레이브(The Brave)’라는 이상한 영문 제목으로 다시 이름 붙어 국내에 개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True Grit’라는 제목 그대로 ‘트루 그릿’으로 명명되어 개봉될 경우 그 의미를 아는 이가 드물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해하기 쉬운 영어 단어를 활용해 ‘더 브레이브’라는 영문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이지만, 차라리 ‘진정한 용기’라고 번역된 한글 제목을 붙이는 편이 영화의 주제 의식에 부합했을 것입니다.

2011년 3월 1일 화요일

'트랜스포머3' 센터널 프라임 사진

이번 <트랜스포머 3: 다크 오브 더 문>에서 새로 등장하는 로봇
센터널 프라임(Sentinel Prime)의 사진이 엠파이어지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영화 속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의 큰형님 내지 멘토격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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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에선 미군 활약이 좀 적당히 나왔으면...


<트랜스포머 3>는 오는 7월 개봉 예정입니다.

韓 SF영화,日유바리영화제 대상

일D5E8~1.JPG


<이웃집 좀비>(2009)를 연출한 오영두 감독의 신작 SF 영화
<인베이젼 오브 에일리언 비키니>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탔습니다...


일본서는 '에일리언 비키니의 침략'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는데
약 500만원 정도의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것이 화제였다고 하네요.

햐아시 카이조 심사위원장은 "영화의 퀄리티는 예산과 관계없다는 것을 이 영화가 증명해주었다.
예산은 적어도 애정과 열정은 높은 작품"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오영두 감독은 그랑프리 상금 200만엔(약 2,800만 원)을 타게 됐는데...
"상금으로 신작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83회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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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진행 중인데
저는 지금 TV를 못보고 있네요..
TV 보시거나.. 아님 인터넷으로 실시간 보시는 분들은...
어느 작품이 수상하는지.. 댓글로 정보 좀 나눠주세요..^^

아래에 부문별 노미네이트 작품들 리스트 올립니다.


* 수상작 모두 발표됐습니다.
실황중계 햬주신 박노협님이 정말 수고해주셨습니다.. 감사..^^


작품상 - 킹스 스피치블랙 스완
파이터
인셉션
에브리바디 올라잇
127시간
소셜 네트워크
토이 스토리 3
더 브레이브
윈터스 본

감독상 - 톰 후퍼 (킹스 스피치)대런 아로노프스키 (블랙 스완)
데이빗 O. 러셀 (파이터)
데이빗 핀처 (소셜 네트워크)
조엘 코엔 & 에단 코엔 (더 브레이브)

남우주연상 - 콜린 퍼스 (킹스 스피치)하비에르 바르뎀 (뷰티풀)
제프 브리지스 (더 브레이브)
제시 아이젠버그 (소셜 네트워크)
제임스 프랑코 (127시간)

여우주연상 - 나탈리 포트만 (블랙 스완)아네트 베닝 (에브리바디 올라잇)
니콜 키드먼 (래빗 홀)
제니퍼 로렌스 (윈터스 본)
미셸 윌리엄스 (블루 발렌타인)

남우조연상 - 크리스찬 베일 (파이터)존 호크스 (윈터스 본)
제레미 레너 (타운)
마크 러팔로 (에브리바디 올라잇)
제프리 러시 (킹스 스피치)

여우조연상 - 멜리사 레오 (파이터)에이미 아담스 (파이터)
헬레나 본햄 카터 (킹스 스피치)
헤일리 스테인펠드 (더 브레이브)
재키 위버 (애니멀 킹덤)

각색상 - 소셜 네트워크127시간
토이 스토리 3
더 브레이브
윈터스 본

각본상 - 킹스 스피치어나더 이어
파이터
인셉션
에브리바디 올라잇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 인 어 베러 월드 (덴마크)뷰티풀 (멕시코)
송곳니 (그리스)
그을린 (캐나다)
무법자 (알제리)

장편 애니메이션상 - 토이 스토리 3드래곤 길들이기
일루셔니스트

미술상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
인셉션
킹스 스피치
더 브레이브

촬영상 - 인셉션블랙 스완
킹스 스피치
소셜 네트워크
더 브레이브

의상상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아이 엠 러브
킹스 스피치
템페스트
더 브레이브

편집상 - 소셜 네트워크블랙 스완
파이터
킹스 스피치
127시간

장편 다큐멘터리상 - Inside JobExit Through the Gift Shop
Gasland
Restrepo
Waste Land

분장상 - 울프맨바니스 버전
웨이 백

작곡상 - 트렌트 레즈너, 아티커스 로스 (소셜 네트워크)존 포웰 (드래곤 길들이기)
한스 짐머 (인셉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킹스 스피치)
A.R. 라흐만 (127 시간)

주제가상 - We Belong Together (토이 스토리 3)Coming Home (컨트리 스트롱)
I See the Light (라푼젤)
If I Rise (127시간)

음향상 - 인셉션킹스 스피치
솔트
소셜 네트워크
더 브레이브

음향편집상 - 인셉션토이 스토리 3
트론: 새로운 시작
더 브레이브
언스토퍼블

시각효과상 - 인셉션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1부
히어애프터
아이언맨 2

단편 다큐멘터리상 - Strangers No MoreKilling in the Name
Poster Girl
Sun Come Up
The Warriors of Qiugang

단편 애니메이션상 - The Lost ThingDay & Night
The Gruffalo
Let's Pollute
Madagascar, carnet de voyage (Madagascar, a Journey Diary)

단편 영화상 - God of LoveThe Confession
The Crush
Na Wewe
Wish 143

'그린 랜턴' 최신 이미지

길거리에 붙이는 '월 포스터'라는데...
코믹북스러운 느낌의 사진들입니다.



necagreenlantern1.jpg

necagreenlantern2.jpg

necagreenlantern3.jpg

necagreenlantern4.jpg



<그린 랜턴>은 <카지노 로얄>의 마틴 캠벨 감독 연출.
라이언 레이놀즈, 블레이크 라이블리, 마크 스트롱, 팀 로빈스 등이 출연..

6월 17일 개봉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