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4일 금요일

'황해', 하정우가 제발 좀 죽었으면 좋겠다

황해
10점




황해
 / 영화  / 감독 각본 나홍진 / 한국 (2010)

조금 늦게 '황해'를 보고 왔습니다. 해가 가기 전에 꼭 보고 싶었던, 그렇게 2010년의 마지막 영화가 되어야 할 영화였는데, 잠시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어느덧 해를 넘겨 새해 첫 영화가 되고 말았네요. 새해부터는 좀 더 부지런히 영화를 챙겨보리라 마음 먹었음에도, 새해도 열흘이 훌쩍 지나서야 겨우 첫 영화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이제라도 빨리 시작하는 것이 게으름을 만회하는 유일한 방법일테지요?

야심찬 남자, 나홍진

잘 아시다시피, 나홍진은 '추격자'의 감독입니다. 그 유명한 '추격자', 그 대단했던 '추격자', 말입니다. '추격자'처럼 데뷔작 하나로 감독의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사례가 또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내에서는 비슷한 경우를 찾기가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봉준호도 박찬욱도 데뷔작만으로는 이만큼 주목받지 못했으며, 제법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는 김지운이나 최동훈의 데뷔작 역시 이 정도의 찬사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정도면 충분히 견줄만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워낙에 그 성격이나 의미가 다른 영화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성공적이다 못해 충격적인 데뷔를 마친 나홍진의 다음 작품이 과연 무엇일까, 이것은 영화인들 뿐 아니라 조금 과장을 보태서 영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관심거리였습니다. 그러한 과도한 관심과 애정 탓인지, 나홍진은 쉴 틈 없이 곧바로 다음 작품 준비에 들어갔고, 불과 몇달 후 '살인자' 라는 이름으로 그 두번째 작품의 실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연변출신 조선족이 서울로 흘러들어와 살인을 저지르고 쫓기게 된다, 는 아직 막연하긴 하지만 역시 나홍진답다는 생각이 드는 스토리 라인은 물론이고, 추격자의 또다른 공신이자 성과물들인 김윤석과 하정우가 또다시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는 소식까지 연이어 전해지자, 그 기대는 더욱 더 커져만 갑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였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추격자'의 아류작들에게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러갔습니다. 그럼에도 '살인자'에 대한  소식은 좀처럼 업데이트 되지 않았더랬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살인자'에서 '황해'로 바뀌었고, 촬영이 시작되었지만 감독이 터무니없는 고집을 부려 예정보다 촬영기간이 길어지고 제작비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더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 정도가 전부였을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빠르게 나홍진이라는 이름을 잊어갔고, 그를 잊지않고 기억해주는 나머지 사람들은 그를 믿기보다는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나홍진도 별 수 없다고, '추격자'는 운이 좋았던 거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나홍진은 그러한 세간의 망각과 소문들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묵묵히 영화를 완성해 내는데만 집중했고, 마침내 그 결과물을 공개하게 됩니다. 우리가 들었던 바로 그대로의 줄거리를 가진 영화, '황해'였습니다. 그동안 못했던, 하고싶은 말들이 넘치도록 많을 법 하지만, 나홍진은 영화 속 구남이나 면가처럼 통 말이 없습니다. '남자들의 영화'를 만든, 남자답게 그저 눈빛으로...영화를 보라고, 거기에 나의 말, 나의 답이 있다고 답할 뿐입니다. 그러니 별수 없지요. 저 오만할 정도로 넘쳐나는 자부심과 입을 닫고 있어도 숨겨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야심을 확인하려면, 영화를 봐 볼 밖에요.

야심의 증거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나홍진이 가진 야심이란 작가로써의 그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증거는 바로 챕터 나누기 였습니다. '1. 택시운전사', '2. 살인자', '3. 조선족', '4. 황해', 이런 식이었습니다. 예술영화 감독들이나 시도한다는 챕터 나누기를 보란듯이, 대놓고 한 걸 보니 나홍진은 '추격자'가 장르영화로만 취급받은 것이 못내 서운했던 모양입니다. 다행히 그 결과는 그의 의도대로 된 듯 합니다. '추격자'에서라면 특유의 속도감과 리듬을 끊어먹는 말도 안되는 짓거리가 되고 말았겠지만, '황해'에서 챕터 나누기는 제법 잘 어울려 보입니다. 애초부터 늘어질대로 늘어진 만연체의 영화인 '황해'였기에 대체 영화가 얼마나 진행된 건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는 걸 가르쳐주는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니까요.

그 뿐이 아닙니다. 나홍진은 챕터 나누기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예 대놓고 이 영화는 소설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제대로 영상화해 낸 예술영화라는 사실을 증명해내고 싶었나 봅니다. 그 증거는 바로 주인공 구남의 꿈과 무의식을 그것도 무려 모노톤의 차별화된 영상으로 시시때때로 반복해서 보여주는 장면들입니다. 평범한 리얼리즘만으로는 스스로가 작가라는 걸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 듯, 주인공의 표정과 대사만으로 주인공의 의식세계를 묘사하는 것은 영화예술의 장점을 부정하는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한 듯, 나홍진은 너무나 친절하게 주인공을 괴롭히는 아내에 대한 망상을 쉬지않고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관객들에게 알려줍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작가로써의 야심이 얼마만큼 큰 지 알 수 있지 않나요?

야심은 하나가 아니다
제가 너무 비꼬았나요? 어느 정도는 의도했던 것이니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꼭 이러한 작가로써의 욕심이 거슬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러한 시도들은 '추격자' 같은 장르 스릴러영화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을 보기좋게 배반하며 오히려 신선한 느낌을 줬을 뿐 아니라 나홍진이 가진 진정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괜찮은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이러한 작가로써의 야심에만 집중하고, 그렇게만 밀고 나갔다면 '황해'는 이론의 여지없이 흥행감독 나홍진이 드디어 작가가 되었음을 알리는 훌륭한 증거물이 되어주었을 겁니다. 그러나 나홍진의 야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홍진은 작가의 칭호를 탐내면서도 흥행감독이라는 타이틀 또한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바로 스케일 큰 액션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불러왔고, 이러한 스케일은 스토리와 시종일관 상충하며 지독하고 징그럽도록 더해져야 하는 감정들을 자꾸만 상쇄시켜버리고 맙니다.
구남의 절망스럽다 못해 죽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상황에 숨막혀하며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어야 할 시점에서 수십대의 차가 뒤집히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죽어 자빠지는 현란하고 스타일리쉬한 액션장면들이 뜬금없이 튀어나옵니다. 그 과정에서 구남은 여지없이, 보란듯이 죽을 위기를 벗어나 유유히 탈출에 성공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방금전까지의 처참했던 감정상태에서 벗어나 대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영화를 보는게 맞는건지, 애매해져 버리고 맙니다.

최근에 본 만화의 제목처럼 슬프고 답답하기는 한데, 어딘가 모르게 '울기에는 좀 애매한'...혹은 스펙터클하긴 한데, 어딘가 모르게 마음껏 통쾌해 하기에는 또 애매한...그런 어정쩡한 상태 말입니다. 이는 물론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인공이 막다른 골목에서 감정적으로 어떠한 돌파구도 없이 짓눌려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면, 카체이서 장면을 비롯한 스케일 과한 액션시퀀스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장면들에서 마치 액션영웅이라도 된듯 보란듯이 위기를 헤치고 결국에는 주인공이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구남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저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영화가 그렇게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하정우, 즉 구남이 제발 죽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살인을 교사한 실체가 차츰 밝혀지고, 사건과 음모의 전모를 구남이 알게 됨으로써, 구남은 점점 더 살아남으려는 이유를 잃게 됩니다. 즉 구남은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중국에 살아서 돌아가더라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살아있는 것보다 나은 상태, 굳이 살아있을 이유가 없는 상태가 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구남에게는 출구가 없다는 것이 너무나 공감되었기에 저는 차라리, 구남이 어서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더 편할텐데 왜 저렇게 살라고 몸부림을 치는가, 그게 안타까울 정도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보고 나서도 하루종일, '황해'가 좀 더 작은 영화로 완성되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계속 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스토리와 감정에 어울릴만한, 리얼리티를 충분히 살리면서도 좀 더 소박하고 디테일한, 규모보다는 밀도로 승부하는 액션시퀀스들이 배치되었다면 면가의 악다구니와 구남의 처절한 생존본능이 더더욱 잘 살면서 감정과 액션이 행복하게 조우하는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관객들은 그 세밀한 밀도에 더더욱 긴장하고 숨막혀하며 구남과 면가가 처한 상황들에 더더욱 이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그랬다면, 구남이 기어이 살아남는, 그렇게 살아남음으로써 더더욱 죽음만도 못한 절망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아이러니가 더더욱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싶었던 겁니다.
지금 영화 속의 구남의 액션디자인은 처절하고 징글징글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매끈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일당백으로 어마어마한 적들과 대적해내는, '액션히어로'의 그것입니다. (이는 구남에 비해 훨씬 처절하고 적나라하며 무자비하게 설계된 면가의 액션디자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경우가 조금 다르고, 구남에 비하면 훨씬 용인 가능한 스케일과 강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면가의 액션씬들이 그 정도일 필요가 있었는가 생각했을 때는 쉽게 동의되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물론 감독은 이렇게 스케일을 키움으로써, 구남이 대적하는 (결국에는 면가의 적이기도 한) 그 적들의 실체가 대한민국 자체, 대한민국의 천민 자본주의 자체라고 말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더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뒤에 가서 밝혀지는 살인교사의 이유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그것입니다. 즉, 구남을 시종일관 괴롭히는 아내에 대한 애증과 김태원이 살인을 교사하게 만든 정부(情婦)에 대한 감정이 사실 같은 것이라는 것이지요. 구남이 김태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궁극의 승자인) 살해당한 승현의 아내에게서도 같은 모습을 발견하도록 함으로써 감독은 구남을 더더욱 절망시키고, 감정적으로 도저히 회생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려 했던 것임에 분명합니다. 구남은 자신이 대체 누구와 무엇때문에 이렇게나 처절하게 싸웠고,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몸부림 쳤는지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어지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나 결론을 이렇게 인간 본연의 문제로 몰고감으로써, 무자비한 자본, 무기력한 공권력, 불평등한 계급 등 감독이 영화적 구조 안에 애초부터 깔아놓았고 대립시켜 놓았던 가치들이 퇴색되고 이 사회속에 내재된 문제들은 결국 인간 본연의 한계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결코 해결될 수 없다는 조금은 이상하고 무책임한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즉, 구남이 자신의 적들에게서 '인간적인 동질성' 을 느끼는 순간, 영화가 2시간 반동안 제기해놓았던 문제들에 대한 결론이 과연 무엇인지 모호해지고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구남도 면가도 태원도 승현의 아내도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행복하고자 몸부림치지만 자본주의에 속해 있는 한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끝내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를 너무나 명징하게 보여주는 결말이며, 이것이 바로 감독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나홍진 스타일'을 보고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는 그것이 감독의 의도였다고, 그것이 바로 나홍진이 작가일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앞서 언급한대로...'황해'가 가진 스타일과 감정, 혹은 스타일과 메시지 혹은 스타일과 스토리의 상충과 그로 인한 혼란과 한계가 너무나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쉽지만, 나홍진에 대한 평가를 다음 작품으로 미루려 합니다. 감독이 절제되지 않은 야심을 극한까지 밀어붙였을 때 어떠한 결과물이 나오는지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황해'는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였지만, 이러한 시도는 한번이면 족할 터입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부디 영화 외적인 것들과 영화 내적인 것들이 행복하게 조우하며, 스타일이 곧 감정이자, 메시지이자, 스토리인 영화를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스케일에 집착하거나 매몰되지 않고, 비록 작고 소박한 영화더라도, 이것이 바로 나홍진 스타일, 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며 고개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영화, 말입니다. 이러한 기대는 사실 아무에게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홍진이라면, 나홍진이니까, 가능한 기대이며 기다림인 것입니다.

여전히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판했지만 비난할 수는 없는 영화,  '황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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