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4일 금요일

더 브레이브 - 코엔 형제, 원숙의 경지

14세 소녀 매티(헤릴리 스타인펠드 분)는 악당 톰(조쉬 브롤린 분)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악명 높은 보안관 루스터(제프 브리지스 분)를 고용합니다. 텍사스의 레인저 라뷔프(맷 데이먼 분)가 가세해 세 사람은 톰을 찾기 위해 인디언 마을로 향합니다.

1969년 존 웨인이 출연했던 동명의 영화로도 알려진 찰스 포티스의 원작 소설을 코엔 형제가 다시 영화화한 ‘더 브레이브’는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보안관이 악당을 쫓는 서부극이지만 서부극의 전형을 과감히 타파합니다. 우선 주인공이 서부극과는 거리가 먼 14세의 소녀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소녀를 돕는 보안관이 잘 생기고 멋들어진 젊은 남성이 아니라 늙고 추레한 알코올 중독자라는 점도 다릅니다. 젊은 보안관도 등장하지만 여성을 존중할 줄 모르며 하늘 높은 자부심에 비하면 총잡이로서 기량이 의심스럽다는 점 역시 서부극의 전형과는 동떨어져있습니다. 액션보다는 엄청난 양의 대사를 바탕으로 서사가 전개된다는 점 역시 독특합니다. (‘더 브레이브’의 엄청난 양의 맛깔스러운 대사는 ‘소셜 네트워크’에도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이렇듯 세 명의 주인공의 개성을 찬찬히 뜯어보면 ‘더 브레이브’는 서부극보다는 서부를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코엔 형제의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범죄자로 가득한 남자들만의 거친 세계를 여주인공이 헤쳐 나간다는 점에서는 ‘파고’를 연상시킵니다.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서사는 코엔 형제의 장기입니다. 매티가 어렵사리 복수를 쟁취하지만 그 대가를 엉뚱한 곳에서 비싼 값에 치르는 것 또한 삶의 아이러니를 강조하는 코엔 형제의 영화답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의 행방을 묘연하게 만들어 여운을 남긴 것과 같이 ‘더 브레이브’도 라뵈프의 후일담을 소개하지 않아 여운을 자아낸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선악이 불분명한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긴장과 유머, 잔혹한 폭력 속에서도 빛나는 클라이맥스의 감동적인 질주 장면의 동화적인 연출은 코엔 형제의 전매특허입니다. 서부극의 전형을 깨뜨리면서도 관객의 서부극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총격전 장면의 연출 기교와 감동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인연과 죽음에 대해 관객으로 하여금 음미하게 하는 쿨하면서도 따스한 에필로그는 코엔 형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 원숙의 경지에 도달했음을 입증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더 브레이브’는 서부극의 틀을 빌려 아버지의 죽음을 뒷수습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자립심 강한 소녀를 묘사한다는 점에서 ‘윈터스 본’을 연상시킵니다. 폭력적인 성인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성장하는 소녀 가장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윈터스 본’과 ‘더 브레이브’는 유사합니다. 소녀를 위협하는 듯하면서도 실은 보호하며 부성의 부재를 메운다는 점에서 ‘윈터스 본’의 티어드롭과 ‘더 브레이브’의 루스터는 비슷합니다. 물론 코미디와 액션의 요소가 강해 상대적으로 오락적인 ‘더 브레이브’와 하드보일드 정극에 가까운 ‘윈터스 본’의 무뚝뚝한 분위기는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브레이브’의 매티는 수다스럽고 과장된 캐릭터이지만 ‘윈터스 본’의 주인공 리는 차갑고 과묵한 소녀라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더 브레이브’의 매티로 분한 헤일리 스타인펠드와 ‘윈터스 본’에서 리로 분한 제니퍼 로렌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극을 이끌어가는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는 놀라우리만치 카멜레온처럼 자유자재로 변화합니다. 평소에는 위스키에 찌든 주정뱅이 늙은이에 불과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눈에서 광채를 뿜어내며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합니다. 서부극에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맷 데이먼이 평소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의상과 분장으로 등장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운 것도 흥미롭습니다. 세 주인공이 러닝 타임 내내 뒤쫓는 톰 역으로 조쉬 브롤린이 분해 클라이맥스에만 출연하는데, 내내 얼굴과 정체를 숨기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 주인공의 면전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분했던 ‘세븐’의 존 도우를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본편과는 무관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제 ‘True Grit’가 ‘더 브레이브(The Brave)’라는 이상한 영문 제목으로 다시 이름 붙어 국내에 개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True Grit’라는 제목 그대로 ‘트루 그릿’으로 명명되어 개봉될 경우 그 의미를 아는 이가 드물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이해하기 쉬운 영어 단어를 활용해 ‘더 브레이브’라는 영문 제목을 붙인 것으로 보이지만, 차라리 ‘진정한 용기’라고 번역된 한글 제목을 붙이는 편이 영화의 주제 의식에 부합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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